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강 방어선 전투 (문단 편집) === [[독립기갑연대]] 제1장갑[[대한민국 육군/수색대|수색대대]]의 화력시위 === [[파일:/20160218_207/lc0107536_14557984046512xPNu_JPEG/bandicam_2015-08-04_10-22-46-645_(1).jpg]] 전날(즉 27일) 오전에 논의되었던 시흥으로의 육본 철수계획에 따라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기로 한 독립기갑연대는 각 일선부대에 파견한 병력을 한남동의 연대본부로 복귀하도록 명령을 내린 다음, 의정부 정면에 지원된 박무열 보병[[소령]]의 제1장갑수색대대 제3중대와 퇴계원 부근으로 출동한 장철부(본명 김병원) [[기병]]소령의 제2기병수색대대의 주력으로 하여금 먼저 강을 건너 대방동에 집결하도록 조치한 바 전날 14:00를 전후하여 제1장갑수색대대는 [[한강대교]]를 건넜고, 제2기마수색대대는 한남동의 도선장에서 연대전용의 부선으로 병마가 함께 도하하였는데, 연대본부는 저녁 늦게야 군량미 등 [[보급품]]과 함께 우중의 차량기동으로 [[영등포]]의 우신초등학교로 이동하였다. 그리하여 28일 아침에 연대장 [[유흥수]] 대령이 시흥보병학교로 가서 병력을 수습하던 [[대한민국 육군본부]] 참모부장 [[김백일]] 대령에게 [[연대(군대)|연대]]의 집결사항을 보고하였다. 김백일 대령은 유흥수 대령에게 『[[장갑차]]를 노량진의 인도교 입구에 출동시켜 대안을 향하여 화력시위를 하라.』 라고 명령하였다. 이에 따라 유흥수 대령은 [[M8 그레이하운드]] 장갑차 1대를 지휘하여 연대본부중대의 화기소대 ― 81㎜ [[박격포]] 3문과 M9 2.36인치 [[바주카]] 2문 및 [[M2 브라우닝 중기관총]] ― 와 함께 노량진으로 나가, 16:00에 수도사무소 부근에서 M8 장갑차의 37㎜포를 자신이 직접 조준하여 한강 대안에 설치된 적의 기관총좌에 사격을 가하였다. 이렇게 6일간의 한강 방어선 전투의 첫 포성이 울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